[칼럼] AI기본법 시행, 신뢰와 혁신의 균형점을 찾아서
오늘(1월 22일) 시행된 'AI기본법'은 대한민국이 인공지능 시대를 맞아 내놓은 첫 번째 제도적 답안이다. 기술 혁신과 사회적 신뢰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는 이 법은, 전 세계가 AI 규제의 방향성을 모색하는 가운데 한국만의 균형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하지만 법의 성공은 정부의 의지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실제 AI를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기업들이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이 법의 진정한 성패를 가릴 것이다.
◆위험 기반 접근, 합리적 규제의 시작
AI기본법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AI에 획일적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용, 의료, 금융, 형사사법처럼 개인의 기본권과 직결되는 '고영향 AI'에는 엄격한 투명성 의무를 부과하되, 상대적으로 영향이 적은 분야에는 유연한 접근을 허용한다. 이런 위험 기반 접근(risk-based approach)은 EU의 AI Act와도 맥을 같이하는 국제적 흐름이다.
법은 인공지능의 안전성, 투명성, 책임성을 국가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하되, 과도한 규제로 혁신의 발목을 잡지 않으려 한다. 이는 규제가 곧 제약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시장의 신뢰를 높여 산업 성장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을 보여준다.
◆투명성 가이드라인, 현장의 목소리를 담다
법 시행 하루 전 공개된 "인공지능 투명성 확보 가이드라인"은 추상적인 법 조문을 구체적 실무로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한다. 주목할 점은 이 가이드라인이 정부의 일방적 지침이 아니라, 업계 의견을 반영해 실효성을 높였다는 것이다.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설명 가능성'이다. AI 서비스 제공자는 사용자에게 AI의 작동 방식, 사용 데이터, 결과 도출 과정을 이해 가능한 수준으로 설명해야 한다. 특히 생성형 AI는 생성물이 AI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명확히 표시해야 한다. 딥페이크 같은 악용을 방지하고, 사용자의 비판적 수용 능력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1년의 유예, 연착륙을 위한 배려
새 규제의 도입은 늘 기업들, 특히 중소·스타트업의 부담으로 작용한다. 이를 고려해 정부는 최소 1년의 계도기간을 뒀다. 이 기간 동안 기업들은 법적 제재 없이 시스템을 정비할 수 있다. 지원데스크와 컨설팅 서비스도 제공돼, 규제 적응을 실질적으로 돕는다.
이는 규제가 기업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아니라, 더 신뢰받는 AI 서비스를 개발하는 계기가 되도록 하려는 의도다. 법 준수가 곧 경쟁력이 되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국가 거버넌스, 일관성 있는 AI 정책의 토대
AI기본법은 개별 기업의 책임만 강조하지 않는다. 국가 차원의 전략적 거버넌스 체계를 법적으로 명문화했다. AI 윤리 원칙, 산업 육성, 인재 양성, 국제 협력을 아우르는 종합 정책을 정부가 수립하고 이행할 법적 책임을 진다.
이는 정권 교체나 정치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장기 일관된 AI 정책의 토대다. 한국이 AI 강국으로 도약하는 제도적 기반이자, 기술 발전이 사회적 가치와 조화를 이루게 하는 안전장치다.
◆기업의 대응전략: 규제를 경쟁력으로
이제 기업들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AI기본법을 피해야 할 규제로 볼 것인가, 아니면 선제적 대응으로 시장 신뢰를 확보할 기회로 삼을 것인가. 후자를 택한 기업들이 장기적으로 시장을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
첫째, 자사 AI 시스템의 영향도 평가부터 시작해야 한다. 모든 AI 서비스가 같은 수준의 규제를 받는 것은 아니다. 자사가 제공하는 AI가 고영향 범주에 속하는지, 생성형 AI에 해당하는지를 명확히 파악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이를 위해서는 법무·컴플라이언스팀과 기술팀의 긴밀한 협업이 필수적이다.
둘째, 투명성 확보 체계를 조기에 구축해야 한다. 계도기간이 있다고 해서 늑장 대응하면 경쟁에서 뒤처진다. 지금부터 AI의 의사결정 과정을 기록하고, 사용자에게 설명할 수 있는 문서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생성형 AI를 활용하는 서비스라면, AI 생성물 표시 시스템을 어떻게 구현할지 구체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셋째, 데이터 거버넌스를 재점검해야 한다. AI의 투명성은 결국 어떤 데이터로 학습했느냐의 문제로 귀결된다. 학습 데이터의 출처, 편향성, 개인정보 보호 수준을 점검하고, 문제가 있다면 지금이 바로 개선할 시점이다. 데이터 품질 관리는 법 준수를 넘어 AI 성능 향상으로도 이어진다.
넷째, 조직 내 AI 윤리·컴플라이언스 전담 조직을 신설하거나 강화해야 한다. AI기본법 대응은 일회성 프로젝트가 아니다. 법과 가이드라인은 계속 업데이트될 것이고, 기업은 이에 지속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법무, 기술, 윤리를 아우르는 전담팀 구성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이라면 외부 컨설팅이나 정부 지원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다섯째, 정부 지원 프로그램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과기정통부가 운영하는 지원데스크와 컨설팅은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 절감과 동시에 정확한 법 해석을 얻을 수 있는 기회다. 특히 스타트업과 중소기업은 이런 지원을 통해 대기업과의 정보 격차를 줄일 수 있다.
여섯째, AI 투명성을 마케팅 포인트로 활용해야 한다. 소비자들은 점점 더 AI 윤리에 민감해지고 있다. '우리 AI는 투명하고 책임감 있게 개발됐다'는 메시지는 강력한 차별화 요소가 될 수 있다. 법 준수를 넘어, 자발적으로 더 높은 윤리 기준을 제시하는 기업이 브랜드 신뢰도에서 앞서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스탠더드와의 정합성을 고려해야 한다. 한국의 AI기본법은 EU AI Act, 미국의 각종 AI 행정명령과 큰 틀에서 맥을 같이한다. 국내 규제 대응을 글로벌 시장 진출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다. 한국 법 준수 경험이 유럽이나 미국 시장 진출 시 자산이 될 수 있도록 처음부터 국제 기준을 염두에 둬야 한다.
◆법의 완성은 현장에서
물론 AI기본법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고영향 AI'의 경계 설정, 투명성 의무의 구체적 측정 방법 등 해석의 여지가 많다. 기술이 빠르게 진화하는 만큼, 법과 가이드라인의 유연한 업데이트도 과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AI기본법의 시행이 의미 있는 출발점이라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이 AI 시대에 기술적 경쟁력과 윤리적 리더십을 함께 갖춘 국가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를 법으로 선언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법이 종이 위의 선언에 그치지 않고, 기업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하며 신뢰와 혁신이라는 두 가치를 동시에 실현하는 것이다.
AI는 이미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와 있으며, 앞으로 더욱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AI기본법이 그 변화의 물결 속에서 한국 사회와 기업이 방향을 잃지 않고 나아갈 수 있는 나침반이 되기를, 그리고 규제가 혁신의 걸림돌이 아닌 날개가 되기를 기대한다. 그 성패는 결국 현장에서 법을 실천하는 기업들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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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훈 (텐에이아이 CEO)
경영학박사로, 인공지능이 산업과 제도를 어떻게 바꾸는지를 현장에서 연구하고 실험해 온 AI 전략가다. AX플랫폼을 표방하는 텐에이아이(Ten AI) CEO로서 대화형 인공지능 기반 서비스와 블록체인 ESG 프로젝트를 이끌었으며, 서울LAW봇·블록ESG 프로젝트 PM으로 실질적 적용 사례를 만들어왔다. 현재 한국인공지능진흥협회, 한국벤처창업학회, 한국지식재산교육연구학회 이사 겸 기술가치평가위원장을 맡고 있다.또한 KDI 2025/26 우즈베키스탄 KSP 사업 자문평가위원과 한국디지털자산포럼(KODIA) 정책기획실장으로서 정책과 현장을 잇는 역할을 수행 중이다. 현재 IT조선에서 「정원훈의 AI 트렌드」를 연재하며, 인공지능과 지식재산, 정책과 산업의 접점을 독자에게 쉽게 풀어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AI가 만든 콘텐츠, 누구의 것인가?』 등 총 9권이 있다.